불교의 가르침에 의하면 우리는 세 가지 차원의 고통을 가지고 있고 그것으로부터 벗어나기를 바란다고 한다.
하나는 몸과 마음이 괴롭고 불편해서 명백히 고통이라고 쉽게 판단되어지는 고통으로 감각적인 차원에서 불편하거나 괴로운 느낌이 드는 고통이다
둘째는 '변하는 고통'으로 어떤 경험이나 감각들은 지금은 유쾌하고 바람직하게 느껴지지만, 나중에는 불쾌한 경험으로 끝나버릴 가능성을 이미 갖추고 있는 것들로 일상의 많은 예에서 찾을 수 있는데 여기서는 새차를 산 사람이 겪는 예를 들고 있다.
[ 처음 며칠 동안 그 사람은 차를 산 것에 대해서 너무 기쁘고 만족해서 끊임없이 그 차에 대해서 생각하고 조심스럽게 차의 먼지를 털어내고 청소하고 광택을 내겠지요. 차 옆에서 자고 싶은 생각까지 들지도 모르지요.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 흥분과 기쁨도 처음처럼 가득 차지는 않을 겁니다. 그 차를 가진게 당연하게 느껴지든지, 그 차보다 비싼 차나 다른 색상의 차를 살 걸 잘못했나 하고 후회하기 시작할 지도 모릅니다. 그 차를 샀을 때의 기쁨은 점점 사라지고 그 차에 대한 불만이 최고조에 달할 때쯤이면 다른 새차를 사고 싶다는 욕망이 생길 겁니다 ]
- 달라이라마의 반야심경 中 -
나는 이 예를 듣고 '결혼'이라는 단어가 생각이 났다. 물론 모든 물건에 있어서 이런 것들은 적용이 되지만 가장 단적이고 가장 극명하게 드러나는 게 바로 사람을 사랑하는 마음에 대한 '변하는 고통'이 아닌가 싶다. 그리고 사람들은 그런 자신의 마음을 인지하지 못한다. 마음이 그렇게 흘러가는 방향을 그냥 받아들일 뿐이다. 싫은데 좋아하려고 할 수도 없는 일이고 열정적인 사랑으로부터 다시 죽이고 싶은 사랑으로 변하는 것 또한 쉬이 볼 수 있는 일이다.
우리는 인지하지 못하고 그저 마음이 그렇게 가는대로 몸이 다시 감지할 뿐이다. 그렇다면 과연 왜 그럴까? 왜 마음은 그런 작용을 하는 것인가 그리고 내가 원하는 자신은 그렇지 않다면 어떻게 해야할까? 어떻게 두고두고 그 사람을 그리고 내가 산 그 '차'를
두고두고 감사하고 볼때마다 즐거워할 수가 있을까? 하는 것을 생각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