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언제나 사랑의 궁극적인 선언이 결혼이라고 생각했는데요.
- 너희가 상상하는 대로의 결혼이라면, 그렇다. 하지마 넌희가 고안한 대로의 결혼이라면, 그렇지 않다. 너희가 고안한 대로의 사랑은 두려움의 궁극적인 선언이다.
- 결혼이 너희를 사랑 속에서 무안하고 영원하고 자유롭게 해줄 때, 그때서야 비로소 그것은 사랑의 궁극적인 선언일 수 있다.
- 지금도 그렇지만, 너희의 결혼은 자신의 사랑을 약속이나 보장의 수준으로 낮추려는 노력에서 나온 것이었다. 결혼은 지금 “그런 것”이 항상 그렇게 되도록 보장하려는 노력이다. 이런 보장이 필요하지 않다면, 너희는 굳이 결혼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너희는 이 보장을 어디에 써먹는가? 첫째, 안전을 확보하는 수단으로( 너희 내면의 것에서 안전을 확보하는 대신에) 그리고 둘째로, 안전을 끝내 장담할 수 없을 때, 서로를 벌하기 위한 수단으로. 깨어진 결혼 약속은 거꾸로 이제 막 개시된 소송의 논거가 될 수 있다.
- 이렇게 해서 너희는 결혼이 아주 쓸모 있다는 걸 알았다. 그것이 하나같이 잘못된 이유들 때문이라 해도.
- 또한 결혼은 너희가 서로에게 지난 감정을 다른 사람에게는 결코 갖지 않으리란 보장을 확보하려는 너희식 시도다. 혹은 적어도 그런 감정들을 다른 사람에게 절대 같은 방식으로 표현하지 않으리란 보장을.
소유가 아닌 결합의 상징, 제한이 아닌 함께함의 상징, 포획이 아닌 포용의 상징으로 삼고자 합니다. 사랑은 소유하거나 제한될 수 없고, 영혼은 결코 사로잡힐 수 없기 때문입니다. 당신이 기쁠 때나 슬플 때나, ‘당신 자신’이 누군지 명확히 기억할 때나 잊었을 때나, 당신이 사랑으로 행동할 때나 그렇지 못할 때나, 당신에게 내 가장 깊은 우정과 사랑을 줄 것을 선언합니다.
관계의 기간을 그 질과 혼동하지 마라. 너는 동상이 아니다. 낸시 역시 마찬가지고. 아무도 너희를 그 자리에 놓지 않았다. 그리고 너희 또한 자신을 그곳에 놓을 필요가 없다. 그냥 사람으로 있어라. 그냥 사람인 그대로 있어라. 앞으로 어떤 시점에서 너와 낸시가 너희 관계를 바꾸고 싶다고 느낀다면, 너희에게는 그럴 수 있는 완벽한 권리가 있다. 그리고 바로 이것이 이 대화 전체의 핵심이다.
사랑하고 존경하고 복종할 것을 약속하게 만들지 말라.
누군가를 지배하는 것보다 자유롭게 하기가 훨씬 더 힘들다. 누군가를 지배할 때는 당신이 원하는 것을 얻지만, 누군가를 자유롭게 할 때는 그들이 원하는 것을 얻는다
'깨달음과 성장' 카테고리의 다른 글
너희 영혼은 굶주려 있다 (0) | 2007.08.10 |
---|---|
내면의 평화를 발견하라 (0) | 2007.08.10 |
아무것도 필요로 하지 말아라 (0) | 2007.08.10 |
생각은 가장 강력한 에너지의 형태 (1) | 2007.08.10 |
살려는 의지가 없기 때문 (0) | 2007.08.0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