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meaningless world engenders fear.”
“무의미한 세상이 두려움을 일으킨다.”
Today’s idea is really another form of the preceding one,
except that it is more specific as to the emotion aroused.
Actually, a meaningless world is impossible.
Nothing without meaning exists.
However, it does not follow that you will not perceive something that
has no meaning. On the contrary,
you will be particularly likely to think you do perceive it.
오늘의 관념은 참으로, 바로 앞서 (연습했던) 관념의 또 다른 형태일 따름이다.
(오늘의 관념이 마음 안에서) 일어나는 감정들에 관해 보다 구체적이라는 점을
제외하고는 (다를 바 없다). 사실상 무의미한 세상이란 불가능하다.
의미가 없는 것은 아무 것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해서 (이것이), 그대가 아무런 의미가 없는 무엇인가를 지각하지 않을
것이라는 것으로 귀결되는 것은 아니다. 이와는 정반대로, 그대는 자신이 그것을
지각한다고 더욱더
생각할 듯싶다.
Recognition of meaninglessness arouses intense anxiety in
all the separated ones. It represents a situation in which God
and the ego “challenge” each other as to whose meaning is to be
written in the empty space which meaninglessness provides.
The ego rushes in frantically to establish its own “ideas” there,
fearful that the void may otherwise be used to demonstrate its own
unreality. And on this alone it is correct.
무의미함에 대한 인식은 분리되어 있는 모든 존재들(=에고) 안에 강한 불안을
일으킨다. 이 (불안감은) 무의미함이 제공하는 빈 공간 안에 누구의 의미가
씌어 질 것인지를 놓고 신과 에고가 “경쟁”을 벌이는 상황을 나타낸다.
에고는 거기에 자신의 “관념들”을 심어놓기 위해 미친 듯이 돌진하는데,
그렇게 하지 않으면 그 공허함이 에고 자신의 비실재성을 증명하는데 사용될까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것만 놓고 보자면 (에고의
판단은)
옳다.
It is essential, therefore, that you learn to recognize the meaningless,
and accept it without fear. If you are fearful, it is certain that you will endow
the world with attributes which it does not possess,
and crowd it with images that do not exist.
To the ego illusions are safety devices, as they must also be to you
who
equate yourself with the ego.
그러므로 그대가 무의미한 그것을 인식하고, 두려움 없이 받아들이는 것을
배우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다.
만약 그대가 두려움에 차 있다면, 그대는 세상이 갖고 있지 않은 속성들을
세상에 부여할 것이며, 존재하지도 않는 이미지들을 세상에 꽉꽉 채워놓을 것임에
틀림없다. 에고에게 있어서 환상이란 안전한 장치이다.
이는 자기 자신을 에고와 동일시하고 있는 그대에게도 환상이 안전한 장치임에
틀림없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The exercises for today, which should be done about three or four times
for not more than a minute or so at most each time, are to be practiced
in a somewhat different way from the preceding ones.
With eyes closed, repeat today’s idea to yourself.
Then
open your eyes and look about you slowly:
오늘의 연습은 서너 번 할 것이며, 각각의 연습은 일분 정도를 넘어서는 안 된다.
그리고 앞서 연습했던 관념들과는 다소 다른 형태로 연습을 해야 한다.
눈을 감은 상태에서 오늘의 관념을 자신에게 반복한다.
그런 다음 눈을 뜨고 그대 주변을 천천히
바라본다.
“I
am looking at a meaningless world.”
“나는
(지금)
무의미한
세상을 보고 있다.”
Repeat this statement to yourself as you look about.
Then
close your eyes and conclude with:
그대 주변을 둘러볼 때 자신에게 이 문장을 반복한다.
그런 다음 눈을 감고
(아래의)
말로
마무리 짓는다.
“A meaningless world engenders fear
because
I think I am in competition with God.”
“무의미한 세상이 두려움을 일으키는 이유는,
내가 신과 경쟁하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You may find it difficult to avoid resistance, in one form or another,
to this concluding statement.
Whatever form such resistance may take, remind yourself that
you are really afraid of such a thought because of the “vengeance”
of the “enemy.” You are not expected to believe the statement
at this point, and will probably try to dismiss it as preposterous.
Note carefully, however, any signs of overt or covert fear which
it may arouse. This is our first attempt at stating an explicit cause
and effect relationship of a kind which you are very inexperienced
in recognizing. Do not dwell on the concluding statement,
and try not even to think of it except during the exercise periods.
That
will suffice at present.
그대는, (오늘의 연습을) 마무리 짓는 이 문장에 대해, 이런 저런 형태로
(일어나는) 저항을 피하기 어렵다는 것을 발견할지도 모른다.
어떤 형태로든 그러한 저항이 일어난다면, 그대가 그러한 생각을 진정 두려워하는
이유는 “적”의 “복수” 때문이라는 것을 자신에게 상기시켜라.
이 시점에서 그대가 이 문장을 믿길 기대하는 것은 아니다.
아마도 그대는 이 문장을 터무니없는 것으로 여기고 잊으려 노력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 문장이 불러일으킬지 모르는 두려움을,
그것이 겉으로 드러난 두려움이든 (아직) 숨어있는 두려움이든지간에,
두려움이 보내는 모든 징후들에 주의 깊게 주목하라.
이 문장은, (아직은) 그대가 인식하는데 있어서 매우 미숙한 종류의 인과관계,
(하지만 너무나도) 명백한 인과관계를 진술하는 첫 번째 시도이다.
마무리 짓는 문장에 대해 (너무) 깊이 생각하지 마라.
그리고 연습할 때를 제외하고는 그것에 대해 생각조차 하지 않으려 노력하라.
현재로서는 그것만으로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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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보는 세상에 답답하다면 ..
적어도 지금 내가 보는 세상이 아니라 내게 세상이 이렇고 오늘의 사건은 이랬다고 말하고 있는 사람에게 통해서 듣는 세상마저도 답답하게 느껴진다면 아직도 나는 환상에 빠져 있는 것이다. 무의미한 세상에 언짢아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 사람이 하는 말과 그 사람이 겪고 있는 오늘의 일이 내게 불편하게 들리고 그것에 대응하는 내 마음이나 그 사람이 마음이 여전히 답답하게 느껴지고 어리석게 느껴진다면 여전히 나는 무의미한 세상에 언짢아 하는 것이다. 내가 세상에 내가 그 사건에 내가 그 사람에게 어떤 글씨를 써놓았기 때문이다. 판단하고 있기 때문이다. 무엇은 좋고 무엇은 나쁘고 이것은 옳고 그르다는 관념을 그 사람이 아니라 내가 쓰고 있기에 내가 답답함을 느끼거나 불편해지는 것이다.
내 안경을 벗어야 한다. 적어도 내게 무언가 불편한게 있다면 내가 세상을 보는 시각이 문제가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내 지각과 인식으로 경험하고 있는 이 세상을 네 인식이 잘못되어서 내가 불편한거야.. 라고 할 수는 없는 일이기에. 내 성장이 필요하고 나의 자각이 필요하고 연습이 필요하다. 사람에게 뭔가를 씌우지 말고 사건에 뭔가를 적어놓지 말고 무의미한 것들과 무의미한 세상과 내가 있음을 아는 것. 멋진 일이다..
잠시 비는 저녁시간을 이용해 걷기 명상을 해본다.
'나는 무의미한 세상을 보고있다'
'무의미한 세상이 두려움을 일으키는 이유는 내가 신과 경쟁하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
'무의미한' 이라는 단어를 적용할 때는 무의미한 mode로 세상을 바라보기에 그 순간만큼은 모든게 무의미 하다는 것을 이해하게 된다.
재
미있는 것은 내가 잠시 그것을 잊고 사는 일상의 순간에 다시 '의미가 많은 것들'과 '의미가 적은 것들'로 구분이 된 세상으로
변해 있다는 것이다. 연습할 때는 쉽게 무의미해 지던 것들이 연습이 끝나고 다른 생각들로 가득 차 있을 때 어느덧 세상은 또다시
의미가 생긴다. 사소한 물건 하나에도 감정이 깃들어 있다는 것을 오늘 보았다. '차 한잔'에 내가 어떤 의미를 담고 있는지 그리고
그것이 버려졌을 때 나의 어떤 마음이 끓어 오르는지( 그 감정에 얽힌)를 체험하는 좋은 기회였다.
“A meaningless world engenders fe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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