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쇼는 <명상, 처음이자 마지막 자유>의 명상에 있어서의 잘못된 방편들 파트에서 /깊은 집중 상태로 인도하는 명상법은 잘못된 것/ 이라고 말한다. 집중을 통해 활짝 열리기보다 더 협소하게 밀폐될 것이며 어떤 것에 집중함으로써 의식의 폭을 좁히면 그대는 존재계 전체를 배제하고 한 점에 초점을 모으는 것이라고 말한다. 이것이 더 많은 긴장을 불러일으킬 것이기에 'Attention' 이라는 단어는 ' At - tention' 을 의미하게 된다고 말이다.
집중은 나름의 유용한점이 있지만 명상은 아니라고 하며 TM명상(초월명상)에 대해서도 언급한다. 만트라를 반복하는 것, 초월명상(Transcendental Meditation: 마하리쉬 마헤시 요기가 창안한 명상법으로 특정한 만트라를 이용한다)을 행하는 것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했는데 초월 명상은 미국에서 주요한 명상법으로 알려져 있어 최근 한국센터에 가서 집중적으로 정보를 보기도 했다. 비틀즈도 했다고 하는 TM명상.은 과학적인 연구나 데이터들이 여럿 있어서 TV프로그램에서 '명상'에 대해 다룰때면 자주 그 논문결과를 볼 수 있기도 하다. 초월 명상은 과학적인 연구가 가능한 유일한 명상법인데 정확히 말한다면 이것은 집중이지 명상이 아니며 집중의 한 방편이면서 연구를 할때의 집중 상태와 같은 범주에 속해 명상과 '아무 상관도 없는 것'이라고 까지 말한다.
오쇼는 명상의 세계는 광대하며 너무나 무한하기에 과학적인 연구가 불가능하다고 말했는데 이런 오쇼가 말하는 어떤 사람이 명상의 세계에 들어섰는지 아닌지를 알아보는 방법은 이것이다.
그것이 유일한 단서이지 두뇌의 알파파를 측정하는 것으로는 아니라는 것이다. 알파파는 여전히 마음의 일부이며 명상은 마음의 영역에 속하지 않으며 명상은 집중이 아니라 이완이다. 자기 자신 안으로 들어가 모든 것을 놓아 버리는 것이 명상이다. 더 릴랙스할수록 그대는 자신이 더 많이 열리는 것을 느낀다.
명상이 집중이 아니라는 것에 대한 이해가 되어진다. 그리고 알파파의 집중상태보다는 '이완된 상태로부터 나오는 저항이 없음과 유연함', relax한다는 것은 '수용'을 의미한다. 수용의 상태가 되었을 때 모든 것을 하나의 유기적인 전체로 존재하게 하여 서로 긴밀이 연결되는 것 그것이 전체성과의 합일(유기적인 통일체)에서 오는 '지복'을 누리는 것이고 그 결과로 보여지는 것이 '자비로움' 아니겠는가..
노력이 개입되면 다시 긴장하게 된다. 그러면 다시 집중할 것이다. 그렇기에 명상은 아무것도 하지 않고 단지 '거기에 존재할'뿐이며 존재하는 자신을 주시하게 되는 것. 일상 생활 속에서도 흔들림없이 '명상'이 되어지는 사람은 자비롭다. 역으로 그렇지 못하고 있다는 것은 일상에서 '명상'의 상태처럼 의식이 깨어있지 못한 것이다.
집중은 나름의 유용한점이 있지만 명상은 아니라고 하며 TM명상(초월명상)에 대해서도 언급한다. 만트라를 반복하는 것, 초월명상(Transcendental Meditation: 마하리쉬 마헤시 요기가 창안한 명상법으로 특정한 만트라를 이용한다)을 행하는 것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했는데 초월 명상은 미국에서 주요한 명상법으로 알려져 있어 최근 한국센터에 가서 집중적으로 정보를 보기도 했다. 비틀즈도 했다고 하는 TM명상.은 과학적인 연구나 데이터들이 여럿 있어서 TV프로그램에서 '명상'에 대해 다룰때면 자주 그 논문결과를 볼 수 있기도 하다. 초월 명상은 과학적인 연구가 가능한 유일한 명상법인데 정확히 말한다면 이것은 집중이지 명상이 아니며 집중의 한 방편이면서 연구를 할때의 집중 상태와 같은 범주에 속해 명상과 '아무 상관도 없는 것'이라고 까지 말한다.
오쇼는 명상의 세계는 광대하며 너무나 무한하기에 과학적인 연구가 불가능하다고 말했는데 이런 오쇼가 말하는 어떤 사람이 명상의 세계에 들어섰는지 아닌지를 알아보는 방법은 이것이다.
그 사람이 자비롭게 변모했는가 아닌가.
그것이 유일한 단서이지 두뇌의 알파파를 측정하는 것으로는 아니라는 것이다. 알파파는 여전히 마음의 일부이며 명상은 마음의 영역에 속하지 않으며 명상은 집중이 아니라 이완이다. 자기 자신 안으로 들어가 모든 것을 놓아 버리는 것이 명상이다. 더 릴랙스할수록 그대는 자신이 더 많이 열리는 것을 느낀다.
명상이 집중이 아니라는 것에 대한 이해가 되어진다. 그리고 알파파의 집중상태보다는 '이완된 상태로부터 나오는 저항이 없음과 유연함', relax한다는 것은 '수용'을 의미한다. 수용의 상태가 되었을 때 모든 것을 하나의 유기적인 전체로 존재하게 하여 서로 긴밀이 연결되는 것 그것이 전체성과의 합일(유기적인 통일체)에서 오는 '지복'을 누리는 것이고 그 결과로 보여지는 것이 '자비로움' 아니겠는가..
노력이 개입되면 다시 긴장하게 된다. 그러면 다시 집중할 것이다. 그렇기에 명상은 아무것도 하지 않고 단지 '거기에 존재할'뿐이며 존재하는 자신을 주시하게 되는 것. 일상 생활 속에서도 흔들림없이 '명상'이 되어지는 사람은 자비롭다. 역으로 그렇지 못하고 있다는 것은 일상에서 '명상'의 상태처럼 의식이 깨어있지 못한 것이다.
- Eunic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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