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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상과 수련

기적수업 서울모임


[ 달려봅시다.. 매우 느리게....  2009  Eunice ]


<Foundation for Inner Peace>에서 기적수업 한국어 공식 번역자로 선정되 구정희님과 함께하는 ' 기적수업의 내용' 에 대한 스터디였다. 방대한 분량에다가 단어 선택 하나에도 큰 고심을 해야하는 'A Course In Miracles'를 번역한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대단하다는 생각을 했는데 처음부터 번역 목적이 아니라 삶에서 체험하기 위해 개인적인  번역으로  시작하셨다기에.. 참으로 인연이구나 싶었다.  10년간 깊이있게 기적수업을 읽으셨고 장장 7년에 걸쳐 번역된 책이 내년에 나올 예정인데 이미 내용 번역들은 거의 끝난 상태라고 하셨다. 그래서 가장 중요한 핵심이 담긴 '기적수업의 내용' 13가지 사항에 대해서 함께 읽고 개념설명과 질의응답 시간이 이어졌는데 .. 감동적이고 아름다운 시간이었다. 비폭력 대화 강의에서 '용서'한다는 개념을 최근에 수용하기 시작했는데 오늘의 '기적수업 내용'에서의 핵심 단어 역시 Oneness를 위한 '용서'였다.

 Oneness를 '하나임'으로 번역 하셨는데 이 Oneness = 하나됨 = 하나님 으로 표현되어진다.  기독교의 '하나님'과는 약간 다른 개념이다. 이 궁극적인 하나됨으로 넘어가기 위해 '용서'하는 것이 사고의 역전(꿈꾸는 이 세상에서 깨어나는)을 가져오는 도구가 될 것이고 용서를 통해 우리가 보는 고통의 세상이 실제세상이 아니며 고통이 아닌 행복의 세상이 되게 하는 방법을 알게 하려는 목적이 있다고 했다.

'용서'에 대한 여러 영성책에서의 결론은 '용서할 것이 없다'라는 것을 '알게 되는 상태'가 되는 것인데 기적수업에서는 이것을 ' 나는 어떠한 일로도 '상처받을 수가 없는 존재'임을 아는 것 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그것을 알게 되는 순간 자신과 타인 모두에게 '자유'가 오게 된다.  에고는 끊임없이 자신의 '분리감'을 강렬하게 느끼고 있고 매순간 '현존'이나 '자기존재를 느끼는' 명상의 상태가 아닌 오로지 '나'를 위한 분리감을 느끼려 하는데 온 에너지를 쓰고 있다. 이것은 너무나 현실과 같아서 이 세상이 꿈이라는 것을 알지 못하는 세상속에 우리는 산다.  힘들지 않을 만큼의 고통속에 인내할 수 있는데 까지 사람들은 이 꿈을 '현실'이라 믿고 산다는 것. 그리고 우리가 지속적으로 '깨달음' 인도되어지는 것은 '에고'의 속성 때문에 겪게 되는 고통으로 삶을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이 꿈 속에서 아마 무한한 행복과 지복을 누릴 수 있다면 그저 꿈인채로 살아가는 것도 나쁘지는 않을 것이다.

결국 우리는  '지각과 감각'을 통해 사는 이 세상에서 '용서'하는 법을 배우게 되는데 일반적으로 말하는 '세상적인 용서'와는 개념이 좀 다르다. 세상적인 '용서'도 물론 쉽지가 않다. 그것은 '네가 나를 상처주었고 그래서 내가 이렇게 되었고 아팠고 다치게 되었다' 라는 것을 그저 '자비'를 베풀기 위해서 혹은 '참아야' 하는 상황이기에 혹은 내가 더 성숙해진 모습으로 보이고 싶어서.. 라고 하는 긍정적이지 않은 이유로 하는 용서인데 그나마도 이 용서는 무척이나 어렵다. 참고 용서했는데 결국 마음 속에서는 그것이 씻겨 나가지 않았으므로 용서는 이루어지지 않게 된다. 그리고 그 눌리어진 화나 분노는 마음속 깊은 곳에 자리잡고 있다가 기회가 되면 다른 방식 다른 상황에서 튀어나오기 마련이다.

이렇게 세상적인 용서도 쉽지 않은데 기적수업에서 말하는 '용서'는 어떻게 이루어 질까?

신나이 적으로 말하면 Re-member해야 하는 것이고 '알면' 되는 것인데 이 '안다는 것'이 참으로 어렵다. 용서를 해야만 꿈에서 깨어난다는 말은 '용서할 것이 없다는 것을 안다'는 말이고 그것을 아는 이유는 우리가 분리감이 없다는 것을 인지했다는 말이기도 하다.

에고는 왜 그렇게 상처받고 상처를 주고 '분리감'을 느끼려고 하는 것인가?

에고는 분리감을 증명하려 하고 늘 판단하려 한다. 그래서 상대와 '분리되고 싶다'고 강하게 느낄때 자신의 상처에 큰 의미를 두고 자신은 타인으로부터 상처받았다고 생각하며 그 상처가 영원해야만 영원하고 강렬한 분리감을 느낄 수 있기에 그것을 정당화 한다. 그것은 판단으로부터 시작되는데 상대를 '그르다' 잘못했다' 라고 판단함으로써 자신은 상대적으로 '잘못이 없고' '착한' 사람이 되려고 하는 것이 에고의 속성이다. 그리하여 죄책감 같은 것을 상대에게 심어주는데 ( 이것은 비폭력 대화에서도 동일한 이야기이다) 분리에서 오는 모든 느낌들을 포함하는 죄책감이다. 상대를 '죄가있다'라고 만들면서 자신은 죄가 없음의 상태로 만들고자 한다. 그것이 에고의 구원방식이다. 나는 괜찮으나 너의 잘못이다. 너로인해 선한 내가 피해를 입었다는 식의 정당화로 상대로부터 강하게 '분리되고 싶어하는 자신'을 체험하는 것.

상대의 유죄를 증거하여 자신의 무죄를 입증하려는 에고는 하나됨을 체험하지 못한다. 우리는 우리안의 불편한 것들을 외부로 투사하여 세상을 보기 때문에 상대의 유죄는 또한 나의 유죄가 된다. 내 안에 그런 마음이 있기에 외부의 것에 '죄'를 만들어내고 그것으로부터 분리되려는 마음과 함께 고통을 경험하게 된다.... 여기서 '용서란'......

상대의 무죄를 증거하는 것이다. 너의 죄가 없어야 나의 죄 또한 없는 것이다. 그렇게 판단하고 있는 '나'가 없음은 내가 그것을 알게 되었다는 것이고 그로부터 자유롭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첫단계에서는 잘못한 사람이 없다는 것을 앎으로서 네가 아닌 나를 용서하게 되는 것이고 더 정확히는 내 과거의 어떤 관념이나 경험적 느낌으로부터 기인한 나의 잘못된 판단을 용서하여 그로부터 자유로워 지는 것이며  그 용서를 통해 ' 나는 상처받을 수 없는 존재'이다 라는 것을 증거하게 되는 것이다 (신나이에서의 되고자 하는 존재로서의 자신을 선택하여 체험하고 드러내는 것 )

에고의 분노나 화에 의한 모든 공격은 '도와달라는 호소'이다. 이것은 NVC에서 충족되어지지 않은 욕구로 표현되는데 대부분 자기 자신이 자신의 과거를 용서하지 못해서 생기고 과거의 어떤 경험으로부터 인연이 되어져 온 불만이다. 그리고 그것이 충족되지 못한 것이 외부로 혹은 누군가에게로 투사되기 시작하는 것이다. NVC에서는 그렇기에 그 공격이 나를 향한 것이 아니라 드러내는 사람의 충족되지 못한 욕구로만 바라보라고 하고 기적수업에서는 우리가 보는 것이 사실이 아니라는 것을 알라는 것이다. 그런 의미로 기독교에서 말하는 '죄'(원죄)와  '어둠' '죽음' 등은 실재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어둠은 실재하지 않는다. 기독교식의 '죄'의 정의는 세상적인 정의이다. 기적수업에서 '죄'는 사랑의 결핍이고 신나이에서 말하는 '두려움'이다. 어둠은 비실재이고 빛을 가렸을때의 현상으로 본다. 죽음 역시 삶이 가려졌을때의 현상일 뿐, 죽음 역시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가 지각하고 감각하는 실재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기적수업이 시작된 것도 꽤 되었으니.. 참으로 '실재하지 않는다'는 동. 서양의 한결같은 말들은 여전히 현대를 안락하게 사는 사람들에게 '어려운 개념'같다. 설명하는 것 자체가 어렵기 때문이다.

비실재의 현실에서 고통이 없다면 얼마나 행복할까.. 만은 에고 덕분에 우리는 끊임없이 힘들고 상처받고 상처주게 된다. 돌아오는 길에 오쇼의 책을 읽었는데 지극히 '사소한' 것 때문에도 우리는 수도없이 싸운다고 한다.

용서는 결국 '나'를 용서하는 것이고 '나의 과거'를 용서하는 것이다. 매순간 다시 태어나지 못하는 것은 용서하지 못한 것들 때문에 과거에 대한 집착이 남아있을때 '현존'하기란 어렵다는 것. 내가 보는 모든 죄와 잘못은 모두 나의 것이다. 상대가 그렇게 보일 뿐이고 그 사람을 부정함으로써 분리감을 느끼고 싶어하는 나의 에고가 있을 뿐이나 그것은 결국 자신을 부정하는 것이다.

동시에 용서받거나 둘다 용서 받지 못하는 선택이 있는데 둘다 자신만이 할 수 있는 선택이다.
세상적인 용서는 인내와 억누름으로 뼈를 깎는 노력이 된다. 그리고 에고를 더욱더 강화시킨다. 다음번 용서를 해야할 시기에 ' 또 내가 용서해야돼? ' 라는 질문이 떠오를지도 모른다. 그것은 용서를 참아낸 것이지 용서한 것이 아니다.

기적수업에서의 용서란 나의 Oneness로서의 '정체성' 을 드러내고 증거하는 방식이어야 한다. 그것들을 기회 삼아서 나의 지각의 오류와 에고의 속성을 교정하는 기회가 된다. 누군가 남에게 당한 불의라고 여겨졌던 행위는 이제 도움과 합일을 구하는 요청이 되고 죄, 질병, 공격은 이제 잘못된 지각으로 여겨지니, 관대함과 사랑을 통한 이해와 앎이 필요하다. 그래서 '용서'란 개념은 우리를 '기억하게' 만드는 수단이 되기에 기적수업에서도 매우 중요하다.

궁극적으로 용서해야 하는 것은 자신이다. 자신이 과거로부터 어떠한 개념으로부터 용서되고 수용되어지면 아무런 잘못이 없는 세상을 보게되고 시공간에 얽매인 삶이 아닌 매순간 새롭게 보는 시각을 갖게 될 것이다.

오늘 오쇼의 명상에 대한 방편 중 한가지에서 읽은 이야기를 덧붙여 본다.

[먼저 대상을 주의 깊게 의식하는 것에서 출발하라. 사물을 더 주의 깊게 보라. 나무 곁을 지나갈 때에는 더 예민한 의식으로 나무를 보라. 잠시 멈추어 서서 나무를 관찰하라. 눈을 부비고 주의 깊게 나무를 보라. 정신을 집중하고 나무를 관찰하라. 정신을 집중하고 나무를 관찰하라. 그리고 평상시와 어떤 차이점이 있는지 들여다보라. 주의 깊게 들여다보면 나무가 달라진. 나무는 더 생생하고 푸르게 빛난다. 그러나 나무는 예전이나 지금이나 똑같다. 다만 그대가 변한 것이다.

꽃을 들여다볼 때에는 마치 그 일에 목숨을 내 건 것처럼 들여다 보라. 그대의 의식 전체를 거기에 집중하라. 그러면 문득 꽃이 달라진다. 꽃은 더 아름답게 빛난다. 영원한 아름다움이 거기에 있다.

그대의 남편, 부인, 친구 또는 연인의 얼굴을 볼 때에도 그냥 무의식적으로 보지 말라. 주의 깊게 관찰하라. 그 얼굴을 명상으로 삼아라. 그러면 그대는 육체만 보는 것이 아니다.]


내 안에 이미 있는 것을   Re member 했을때 그것이  Awareness 이고 그때 고정된 현실은 그대로이나 내가 그것을 인식하는 모습은 매우 달라질 것이다..

- 매일매일 Remember 하는 자신를 체험하며.. Eunic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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