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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달음과 성장

두려움에 대하여..


[ Nottinaham Castle, UK  2009 Eunice ]



두려움은 삶에서 가장 큰 문제중 하나이다. 두려움에 사로잡힌 마음은 혼란 속에 살고 갈등 속에 살기 때문에 폭력적이고 일그러지고 공격적일 수밖에 없다. 그런 마음은 스스로 만든 생각의 틀에서 좀처럼 벗어나려 하지 않는다. 이것이 위선을 낳는다. 두려움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한, 아무리 높은 산에 올라가고 별의별 신을 다 만들어내도 그 마음은 여전히 어둠 속에 있을 것이다
두려움은 생각의 결과인가? 그렇다면 생각이란 언제나 낡은 것이므로 두려움도 언제나 낡은 것이다. 이미 말했듯이 새로운 생각이란 없다. 설사 새로운 생각을 인정한다 해도, 인정하는 순간 그것은 이미 낡은 것이 된다. 따라서 우리가 두려워하는 것은 낡은 것이 되풀이되는 것, 즉 이미 지나간 일에 대한 생각을 미래에 투사하는 것이다.

지금 우리의 문제는, 마음이 완전히 그리고 전체로 현재에 사는 게 가능한가 하는 것이다. 그렇게 할 수 있는 건 오직 두려움 없는 마음뿐이다. 이걸 이해하려면 생각과 기억과 시간의 구조를 이해해야 한다. 그것을 머리나 말로만 이해하지 않고, 정말 가슴으로 마음으로 뼛속 깊이 이해하면 두려움에서 해방될 것이다. 그런 다음에야 비로소 마음은 두려움을 만들어내지 않고 생각할 수 있다.


무엇인가가 나의 공허함을 채워주기때문에 그것에 의존한다. 지식에 의존하고, 책에 의존한다. 왜냐하면 그것이 나의 공허함을, 나의 가벼움을, 나의 어리석음을 감춰주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식이 무척이나 중요해졌다. 나는 그림의 아름다움에 대해 이야기한다. 내 자신이 속으로 그것에 의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의존하는 것은 내가 공허하고 외롭고 부족하다는 뜻이고, 그 때문에 나는 그대에게 의존한다. 그래서 나는 의존하는데, 그 말은 내가 외로워지는 걸 두려워한다는 뜻이다. 나는 나의 공허함을 두려워한다. 그래서 나는 그 공허함을 물건들로, 관념으로, 사람으로 채운다.

나는 내가 두려워하고 있다는 걸 알게 된다. 그래서 집착한다. 그 두려움은 기억에 대한 반응과는 전적으로 다른 무엇이다. 그럼 그대에게 일어난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실제로 알게 된 것인가? 아니면 과거가 반응하는 것인가?
 
두려움은 모든 것을 부패하게 만들기 때문에, 두려움에서 벗어나려면 마음이 어떻게 두려움을 만들어내는지를 이해해야 한다. 마음이 만들어내는 것 말고는 두려움 같은 건 없다. 마음은 쉴 곳을 원하고, 마음은 안전을 원하면, 마음은 갖가지 형태로 자기를 보호하려는 야심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이 존재하는 한 너희는 두려움을 가질 것이다. 야망을 이해하는 것, 권위를 이해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이 두가지 다 두려움을 나타내는 것이며, 그것은 곧 파괴이다.

출처 : 두려움에 대하여 -지두 크리슈나무르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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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업전에 시간이 남아 책꽂이에 꽂힌 크리슈나무르티의 이 책을 읽었다. 수업 전 짧고도 강렬하게 머릿속에 남겨진 한구절이 머리에 콱 박혔다. 내가 꺼내어 놓지 않기에 더욱이 골이 패이고 두려움에 두려움이 더해지는 상황을 만들게 되는 그 두려움이 내겐 무엇일까.. 들여다보기도 싫고 누가 건들기만 하면 그저 상처입고 심상해 버리는 그것을 내가 이해하고 내려놓을 수 있을까. 두려우면 집착하게 되고 그 집착은 잠재적으로 가지고 있다가 언젠가 드러나게 마련이다. 또 드러난 집착은 화나 폭력으로 나타나게 된다. 간이 노한걸까? 흠.. 나의 두려움을 더 들여다 보고 그것을 이해하면 한결 더 가벼워 질 것이다. 이미 그것을 체험 했으니까 더 많은 자신의 두려움을 또렷하게 보고 싶다.

- Eunice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