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1TV의 <심야토론> 소감 - 곰의 충정
어 제(5.11) KBS1TV의 <심야토론>을 봤다. 전체적으로 2주 전의 <심야토론>보다는 나았다고 생각한다. 2주 전의 토론이 워낙 형편없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2주 전이나 어제나 토론을 형편없게 만드는 자들은 이명박을 대변하는 자들이다. 이런 토론이 누구에게 유리할지를 굳이 따지자면, 이명박을 비판하는 사람들에게 훨씬 유리하다. <심야토론>은 <100분토론>보다 훨씬 더 이명박을 궁지에 몰아넣고 있다. 엄청난 숫자의 사람들이 지켜보는 TV토론에서 이명박을 대변하는 자들이 형편없을수록, 그들이 오만불손한데다 무식하기까지 할수록, 이명박의 지지율은 더 곤두박질칠 것이다. 하지만 이제 이명박의 지지율이 현재보다도 더 현저하게 낮아질 가능성은 크지 않다고 본다. 여전히 이명박을 지지하는 25% 가량의 국민들 가운데 상당수는 이명박의 무조건적인 지지자들이기 때문이다. 상위 5% 가량의 부자들 가운데 상당수가 그렇고, 골수 우파가 그렇고, 지역적인 편견에 머리를 내맡긴 사람들이 그렇다. 20% 이하로 내려가기는 힘들 것이다. 만일 20%조차 유지되지 않는다면, 이명박은 정치적으로 사형선고를 받은 것이나 다름없다.
아 무튼 이명박에게는 TV에 나와 안 그래도 검은 자신의 얼굴에 더 먹칠을 해대는 저 형편없는 저질의 인사들이 재앙이다. 목하 상황이 이런데도 이명박이 계속 이런 인물들로 하여금 TV에 나와 떠들어대도록 시키거나 내버려두는 이유로는 세 가지 정도를 생각해볼 수 있다. 첫째, 이병박은 마조히즘, 즉 자학을 통해 만족을 느끼는 병적인 심리상태에 빠져있다. 이 가능성은 별로 크지 않은 것 같다. 매체를 통해 그의 모습을 보건대 그의 심리적 증상은 마조히즘보다는 나르시즘으로 진단하는 것이 정확하다고 보인다. 둘째, 이명박은 이런 상황 자체를 인식하지 못할 만큼 어리석다. 그간 그가 사태에 대처해온 방식을 보건대, 이 가능성은 상당히 크다. 셋째, 이명박에게는 TV에 내보낼 더 나은 사람이 없다. 그가 임명해온 공직자들의 면면을 볼 때, 이 가능성도 상당히 크다. 결국 이명박의 어리석음과 그 주변 인물들의 변변치 못함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이런 재앙이 연거푸 재발되고 있는 것이라고 하겠다.
어제 <심야토론>에서도 재앙은 발생했다.
먼 저 중앙일보 논설위원인 김진. 짐작컨대, 김진은 어제 두 시간도 못되는 짧은 시간 안에 그나마 남아있던 이명박 지지자들 가운데 수만 명에서 수십만 명, 혹은 그 이상의 사람들로 하여금 이명박에 대한 지지를 철회하도록 만들었다. 고효율의 재앙 메이커다. 자기들끼리 모여 있는 자리도 아니고, 수많은 국민들이 빤히 보는 앞에서 국민들에게 침을 뱉었다. 국민들은 무식하고 독자적인 사고능력도 없는 어중이떠중이에 불과하다고 떠들어댄 것이다. 이런 소리를 듣고 기분이 좋은 사람은 자신이 앞서 말한 마조히즘에 빠진 것이 아닌지 심각하게 고민해보아야 할 것이다. 김진은 아무런 전략도 지식도 없이, 서슴지 않고 국민들을 연신 모욕해대었다. 용기는 가상하고 진솔함은 높이 살 일이나, 안타깝게도 무식과 무모함과 오만이 극에 달해 현 정부에게는 지극히 위험한 인물이다. 지금쯤은 아마도 이명박조차 “값싸고 질 좋은 미국 쇠고기”, “국민들이 미국 쇠고기 먹고 싶지 않으면 알아서 안 먹으면 될 일” 운운하며 속내를 비쳤던 것을 후회하고 있을 것이다. 그런 발언이 반대자들만 잔뜩 늘여놓았기 때문이다. 이명박이 후회하고 있을 일을 김진은 여전히 열심히 해대고 있다. 내가 이명박이었다면 속이 바짝바짝 타들어갔을 것이다. 나만해도 그의 면상을 쳐다보고 있기가 매우 곤혹스러웠다. 사람이 할 일이 못되었다. 하지만 이 나라에 대한 충정에서, 이명박의 참회를 바라는 입장에서, 중앙일보가 정신을 차려주기를 고대하는 심정에서, 앞으로도 김진이 방송과 신문에서 활발하게 활동해주기를 바란다. 김진 개인에게는 미안한 일이지만 말이다.
그 리고 정인교 인하대 경제학부 교수. 이 사람은 <100분토론>에서도 본 인물이다. 거기서 ‘로또와 벼락론’을 펼친 사람이 그가 아니었던가? 이 심오한 ‘로또와 벼락론’에 대해서는 이미 많은 분들이 지적한 바 있고, 나 역시 며칠 전 <미국 쇠고기 먹고 죽을 확률에 대해 한마디>라는 글에서 한 마디 한 적이 있다. <심야토론>에서는 <100분 토론>에서보다는 약간 기가 죽은 모습이었다. 더 정확하게 표현하자면, 기고만장하는 태도가 사뭇 약해졌다. 깨우친 바가 있는지 ‘로또와 벼락론’은 다시 꺼내지 않았다. 하지만 이 분도 의연함을 완전히 잃지는 않았다. 사오정처럼 동문서답하고 같은 말을 끝없이 반복하여 상대방의 토론에 대한 흥미를 무장해제시키는 데 발군의 기량을 발휘하는 사람으로서, 어제도 '참을 수 없는 위험의 가벼움'과 ‘OIE 종교’라는 새로운 종파를 꿋꿋하게 역설하고 전도했다. 김진이 보는 이의 분통과 염장을 자극하는 기술자인 반면, 정인교는 무한동어반복전략을 통해 보는 이의 지구력을 시험한다. 그래도 ‘다 끝났으니 이제 그만 덮고가자’라는 발언을 함으로써 김진의 기술을 벤치마킹하는 데 일정한 성공을 거두었다.
김 진과 정인교의 모습을 보면 프랑스의 작가 라퐁텐의 우화가 생각난다. 주인에게 충성을 바치는 곰이 주인의 코에 앉은 파리를 잡으려다가 주인을 죽이고 만다는 이야기 말이다. 김진과 정인교를 비롯한 어용언론인들과 어용교수들은 주인 이명박을 위해 당분간 조용히 지내는 것이 진정 충성을 표하는 길일 줄 안다.
이 명박 편의 남은 주자로서 원희룡 의원은 자신의 역할을 잘 수행했다. 이명박과 정부여당이 원희룡 의원을 내세운 것을 보면 그래도 이들이 김진 수준은 아니라는 것을 감지할 수 있다. 원희룡은 한나라당에 있다는 것만 빼면 딱히 못마땅한 인물은 아니다. 여전히 한나라당에 있다는 것 자체가 심각한 문제이기는 하지만 말이다. 한나라당에서 그간 '찬밥'만 얻어먹고 있던 그로서는 이명박의 ‘설거지’까지 해주러 나서야 하는 일이 썩 못마땅했을 수도 있겠지만, 이 또한 자신을 위한 홍보의 기회가 아니겠는가. 어쨌든 그는 잘못한 부분을 일정하게 인정하는 제스처를 취함으로써 시청자들에게 어느 정도 어필하는 데 성공했고, 이 성공에 힘입어 재협상을 거부하는 입장까지 큰 반감 없이 피력하는 데 성공했다.
재 협상론자들은 모두 좋은 모습을 보여준 것 같다. 유인경 경향신문 선임기자는 처음으로 평범한 국민의 입장을 그대로 대변하는 사람이 토론에 참여하게 되었다는 느낌을 주었고, 이해영 교수는 FTA전문가답게 정확하고 실속 있는 논리와 지식을 펼쳐보였다. 최재성 의원도 민주당의 입장을 요령 있게 피력했다.
전 체적으로 어제의 <심야토론>은 협상비판론자들이 뚜렷하게 성과를 거둔 마당이었다. <100분토론>의 토론현장에서 협상비판론자들이 썩 만족스럽게 토론을 이끌지 못했던 것과는 달리, 어제의 토론은 김진과 정인교의 빛나는 활동까지 돋보이는 바람에 한결 만족스러웠다. 물론 <100분토론>은 미국의 사료금지조치에 대한 농림부의 결정적 오류를 널리 밝히는 계기를 마련해주었다는 점에서 큰 성과가 있었다.
끝 으로 사회자 정관용씨. 이 분은 내가 오랫동안 좋아해온 인물이다. 사정이 되는 대로 그가 진행하는 KBS1라디오의 <열린토론>을 들어온 것도 벌써 여러 해다. 이 분의 강점은 해박한 지식과 쟁점 사안에 대한 뛰어난 분석력, 그리고 패널들의 발언에 대한 영민한 이해력에 있다. 그런데 그에게서 요즘 심각한 이상기류가 읽히고 있다. 문제는 세 가지다. 첫째, 자신의 존재감을 느끼고 있다는 것이다. 목에 힘이 들어가고, 사회자를 연출자로 착각하는 경향이 보인다. 워낙 여기저기서 칭찬을 많이 듣다보니 그럴 법도 하지만, 손석희와 늘 대비되는 입장에서는 특히 최근 들어 상당히 초라해져간다는 느낌이다. 손석희는 약간 과장해서 말하자면 기적적인 존재고, 한국의 행운이다. 그만큼 칭찬을 많이 듣는 사람이 있을까. 그래도 조금도 흔들림이 없다. 시종일관이다. 정관용은 요즘 많이 흔들리는 것 같다. 사회자가 자기만족에 빠지면, 토론은 우스워진다. 둘째, 기계적인 매너리즘의 문제다. 정관용은 항상 찬반양론 사이에서 기계적인 중립을 지키려고 한다. 기준점이 패널들 사이의 딱 중간이다. 이것은 잘못된 기준이다. 모든 사안에서 양비론 혹은 양시론으로 일관하는 것이 사회자의 책무가 아니다. 사회자는 자신이 국민의 한 사람이라는 데서 정체성을 찾아야 한다. 손석희가 그렇게 하고 있다. 정답이 50인데 -100과 100을 말하는 패널들 사이에서 0이 답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심각한 착오다. 이렇게 되면 정관용 자신은 중립이었다고 생각할지 모르나, 토론은 전체적으로 편향적으로 되고 만다. 셋째, 정권이 바뀌고 나서 그가 정부여당 편으로 약간 기울었다는 의심을 지울 수가 없다. 물론 그 정도가 심각하거나 현저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앞서 지적했던 그의 강점들이 요즘 들어 무척 무뎌졌다는 느낌이다. 그 원인이 이명박에 대한 두려움이 아닐까 우려된다. 아직은 손석희처럼 흔들 수 없는 확고한 지명도를 갖춘 것도 아니고, KBS라는 조직의 독립성도 MBC와는 다소 다를 것이기 때문에 여러 모로 신경이 쓰이지 않을까 짐작해본다. 하지만 그런 것에 너무 신경을 쓰다가는 자신의 공적 필요성이 사라져버릴 수도 있다. 이런 의구심이 사실이 아니기를 바란다. 여전히 정관용을 좋아하는 한 사람으로서, 앞으로도 좋아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하는 말이다.
- 출처 : http://hantoma.hani.co.kr/board/view.html?board_id=ht_politics:001001&uid=24076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