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이 모르는 걸 체험할 수는 없다. 그리고 너희는 천국을 체험하지 못했기 때문에 자신이 바로 지금 '천국'에 있음을 모른다. 보다시피 너희에게 이것은 악순환이다. 너희는 자신이 모르는 걸 체험할 수 없고, 즉 체험할 방법을 아직 찾아내지 못했고, 너희는 자신이 체험하지 못한 것을 알 수 없다.
내가 이런 설명을 하는 건 너희가 체험하지 못한 것을 알아내고, 그리하여 그것을 체험해보라는 것이다. 앎은 체험으로 들어가는 문을 열어준다. 그런데 너희는 그 반대라고 상상한다.
사실 너희는 너희가 체험한 것보다 훨씬 더 많은 것을 알고 잇다. 단지 자신이 안다는 걸 모를 뿐이다. 예컨대 너희는 신이 존재함을 안다. 하지만 자신이 그걸 안다는 걸 모를 수도 있다. 너희가 신을 체험하는 동안에도 줄곧. 결국 너희는 알지 못한 채 체험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그 체험을 전혀 하지 못한 것과 같다.
당신은 결과에 집착하지 않습니까?
- 절대로 않는다. 내 기쁨은 창조에 있지 결과에 있지 않다.
너희가 저항하는 건 지속되고 너희가 살펴보는 건 사라진다/고 말씀하셨는데 그 뜻을 설명해주시겠습니까?
- 스스로 어떤 실체성도 부여하지 않은 것에 저항할 수는 없다. 어떤 것에 저항하는 행동은 그것에 생명을 주는 행동이다. 어떤 에너지에 저항할 때, 너희는 그것이 거기에 자리잡게 한다. 저항하면 할수록 그것은 점점 더 현실이 된다. 너희가 저항하는 것이 무엇이든 간에. 너희가 눈을 뜨고 살펴보는 것은 사라진다. 즉 그것은 그 환상적인 형태를 유지하기를 그친다. 만일 너희가 어떤 것을 살펴본다면, 그것을 진짜로 살펴본다면, 너희는 그것을 꿰뚫어보게 될 것이며, 그것이 너희에게 보여주던 모든 환상을 꿰뚫어보게 될 것이다. 그러면 네 시야에 남는 것은 오직 궁극의 실체뿐이다.
만일 자신이 살펴보는 것을 사라지게 하고 싶지 않다면요?
- 언제나 그것이 사라지길 원해야 한다! 너희의 현실에서 붙들어야 할 건 하나도 없다.
제가 어떤 걸 원치 않다는 생각까지도요?
- 네가 그것을 원치 않는다면 왜 굳이 그것에 대해 생각하는가? 원치 않는 것은 재고하지 마라. 그러나 만일 네가 굳이 그것에 대해 생각해야 한다면, 즉 그것에 대해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면, 저항하지 마라. 차라리 그것이 무엇이든 간에 정면으로 살펴보고 나서, 즉 그것을 자신의 창조물로 인정하고 나서, 그것을 계속 유지할지 말지 네 마음대로 선택하라.
우리가 '그곳에 이르지'않을 방도가 없다면 삶의 의미는 무엇입니까? 우리는 자신이 하는 일들에 대해 전혀 걱정할 필요가 없는것 아닙니까? - 물론 너희는 걱정할 필요가 없다. 그러나 주의를 기울이는 게 좋을 것이다. 그저 지금 자신이 무엇이 되고 있고, 무엇을 하고 있고, 무엇을 갖고 있는지 깨닫고, 그것이 자신에게 도움이 되는지만 살펴보라. 삶의 목적은 어딘가에 이르는 것이 아니다. 삶의 의미는 너희가 이미 그곳에 있고, 예전에도 항상 있어왔다는 걸 깨닫는 것이다.
< 신나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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