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여기에 온 것은 사랑을 펼치는 것으로 신과 함께 창조하기 위해서이다. 이외에 다른 목적을 품고 허비하는 삶은 무의미하고, 우리의 천성에 반反하며, 결국에는 고통스럽다. 그것은 물질이 사람보다 더 사랑받는 어두컴컴한 평행우주 속에서 헤매는 것과 흡사하다. 우리는 신체감각들로 지각되는 것은 높게 평가하는 반면, 우리가 아는 가슴 속 진실은 낮게 평가한다.
하지만 사랑은 육신의 눈으로 보고 육신의 귀로 들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몸의 감각들로는 그것을 인지할 수 없다. 그것을 인지하는 건 다른 종류의 시각vision이다. 형이상학자들은 그것을 제3의 눈이라 부르고, 밀교 기독교도들은 그것을 성령의 시각이라 부르며, 또 다른 사람들은 그것을 참나라 부른다. 그 명칭이 어떠하든, 사랑은 우리가 종래 사용해오던 방식이 아닌 다른 방식의 "봄," 혹은 다른 종류의 앎이나 사고방식을 요구한다. 사랑이란 우리 가슴을 직관으로 아는 것이다. 그것은 우리 모두가 은밀하게 갈구하는 '너머의 세상'이다. 사랑에 대한 이 태고적 기억은 늘 우리를 따라다니면서, 우리더러 다시 돌아오라고 손짓한다.
사랑은 물질이 아니다. 그것은 에너지다. 그것은 어떤 방에서, 어떤 상황에서, 어떤 사람에게서 느끼는 느낌이다. 그것은 돈으로 살 수 없다. 섹스로도 그것을 장담할 수 없다. 그것은 물질세계와 전혀 상관이 없지만, 그럼에도 그것을 표현할 수는 있다. 우리는 친절과 나눔과 자비와 동정심, 평온함과 기쁨과 받아들임, 판단보류와 함께함과 친근감으로 그것을 체험한다.
사랑만이 실재이다. 사랑의 대립물은 두려움이지만 모두를 포용하는 건 대림물을 가질 수 없다. 우리가 사랑으로 생각할 때, 우리는 말 그대로 신과 공동창조를 하고 있다. 우리가 사랑으로 생각하지 않을 때, 오직 사랑만이 실재이므로 실제로는 환각에 빠져 있을 뿐 아무것도 생각하고 있지 않는 것이다.
- A return to lov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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