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처음으로 맛있게 먹었던 Lobster. 해변가..U.S.A 2010 ]
자연의 원리 종강에 붙여 몇자 남길려고 했는데 인연이 이어지니 공부가 계속되어 아직 남기지 못한 말들이 있다. 누군가 던져주는 자신의 경험과 질문들 속에서 이야기를 하는 가운데에 내가 왜 '자연의 원리'를 좋아하는 건지 왜 계속 머리속에 남기려고 하는지 생각해 보게 되었다.
답은 하나. (깨달을) 覺(사람)者. 각자 잘 사는 방법을 알게 하기 때문이다. 自然은 스스로 그러한 것이 아니라 '저절로' 그렇게 된다는 것. 그걸 알아가는 것. 그리고 내가 먹고 입고 살고 하는 가운데에서 누구에게 어쩔 수 없이 하는 '의지'를 최소화 할 수 있는 좋은 툴이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내가 추구하는 {남들인생 지적질 할 필요 없고 내 인생 하나 잘 살되 그것이 헛되지 않게 한다는 것}에 잘 부합한다. 대개 자신의 현실을 잘 보지 못하는 사람은 자신의 모습을 남에게서 많이 찾게되는데 여기에 '비판'이 잘 가해진다. 자연의 원리에서 배우는 섭생과 '현실파악'의 강점은 니 무릎팍이나 똑바로 하라는 거다.
니 앞에 쌀이 떨어졌는가. 그것이 정당한가. 니가 하는 일이 자신에게 궁극적으로 도움이 되고 있는가도 못따지고 있으면서 감놔라 배놔라 하는 일들. 무수히 많다. 요즘 나오는 기사들을 보면 세상에.. 얼마나 전투적으로 남을 까대는데 열을 올리는건지. 개인 취향별로 까대다 보니 누구도 안 까일 수가 없는 실정이다. 내가 그런인생을 살만큼의 공인이 아니라는 게 왠지 감사해지는 요즘이지만 나 역시도 내 시선이 외부로 뻗쳐 나가지 않도록 자신을 되돌아 보게 해주었다는 점에서 '자연의 원리' 공부는 의미있는 공부였다.
내 마음 하나 편안한지. 내 뱃속이 편안해 졌는지. 궁극적으로 남이 볼때 행복해 보이는 '나'가 아니라 아무도 나를 인정하지 않아도 내가 행복한건지. 인생 재미있고 즐거운지. 이걸 보라는 말이다. 내 몸의 현실 하나도 못보면서 남 얘기하고 지적질하고 전투적으로 입을 놀려봐야 내 얼굴에 침뱉기 밖에 안된다. 참 허무맹랑하고 한마디로 헛짓이라는 거.
내 인생을 제대로 볼 줄 알기 전에. 내 몸을 바르게 해서 내 생각이 바르게 되고 내 시각이 '현실을 직시할 줄 아는' 상태가 되었을때의 현실은 무척이나 다를 것이다. 역으로 그 상태가 되기 이전엔 모든게 썩어있고 남들이 탁해 보이고 간사하고 공정하지 못하고 나 이외의 모든 것들은 바르게 돌아가지 않는 것만 같고 그런 환경들이 '내'가 살기 힘들어지는 세상을 연출하고 있는 것만 같다는 것이다.
요즘도 가끔은 비판에 칼을 세우거나 원치 않는 고정관념이나 습들이 인식하지 못하고 나올때가 있다. 그럴땐 여지없이 내 기분이 안좋을때이다. 여기서 '기분'이란 감정상태라기 보다는 '氣'의 분할 이라는 의미에서의 기분(氣分)을 말한다. 적어도 그러할 때 다시 '나'에게로 돌아올 수 있다는 것. 정말 이해하기까지 어려운 사안이었지만 다른 사람의 잘못이 아닌 내 시각의 비뚤어짐 때문에 상대가 그렇게 보인다는 그 사실이 이해되면서 왜 그런지 이유를 찾아냈던 것도 '자연의 원리'공부였다.
사람이 살면서 꼭 행복할 필요는 없지만 개인적인 만족으로의 '행복'을 추구한다면 내려놔야 할 것들이 많은 것 같다. 많다기 보다는 본인이 느끼기에 '많아'보이는 것이긴 하지만.
내가 세상에 헛발길질을 더하고 헛소리를 덜할수록 마음은 쓸데없는 부정적 에너지를 만들지 않고 나 아닌 다른 모든 것들을 보면서 '불편해 하는'감정이 줄어들기 때문에 마음이 자연히 가벼워지게 된다.
그래서// 귀에 딱지가 열번 앉아도 강조할 수 밖에 없는 것이 '건강문제'이다. 건강하지 않으면 원치 않아도 불편한 감정과 시각들을 몸에서 생산해내기 때문이다.
재미있어서 하는 공부이지만 '자연의 원리'에 대한 이야기도 조금씩 풀어보려고 한다.
목말라 하는 누군가는 들어줄테니까...
답은 하나. (깨달을) 覺(사람)者. 각자 잘 사는 방법을 알게 하기 때문이다. 自然은 스스로 그러한 것이 아니라 '저절로' 그렇게 된다는 것. 그걸 알아가는 것. 그리고 내가 먹고 입고 살고 하는 가운데에서 누구에게 어쩔 수 없이 하는 '의지'를 최소화 할 수 있는 좋은 툴이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내가 추구하는 {남들인생 지적질 할 필요 없고 내 인생 하나 잘 살되 그것이 헛되지 않게 한다는 것}에 잘 부합한다. 대개 자신의 현실을 잘 보지 못하는 사람은 자신의 모습을 남에게서 많이 찾게되는데 여기에 '비판'이 잘 가해진다. 자연의 원리에서 배우는 섭생과 '현실파악'의 강점은 니 무릎팍이나 똑바로 하라는 거다.
니 앞에 쌀이 떨어졌는가. 그것이 정당한가. 니가 하는 일이 자신에게 궁극적으로 도움이 되고 있는가도 못따지고 있으면서 감놔라 배놔라 하는 일들. 무수히 많다. 요즘 나오는 기사들을 보면 세상에.. 얼마나 전투적으로 남을 까대는데 열을 올리는건지. 개인 취향별로 까대다 보니 누구도 안 까일 수가 없는 실정이다. 내가 그런인생을 살만큼의 공인이 아니라는 게 왠지 감사해지는 요즘이지만 나 역시도 내 시선이 외부로 뻗쳐 나가지 않도록 자신을 되돌아 보게 해주었다는 점에서 '자연의 원리' 공부는 의미있는 공부였다.
내 마음 하나 편안한지. 내 뱃속이 편안해 졌는지. 궁극적으로 남이 볼때 행복해 보이는 '나'가 아니라 아무도 나를 인정하지 않아도 내가 행복한건지. 인생 재미있고 즐거운지. 이걸 보라는 말이다. 내 몸의 현실 하나도 못보면서 남 얘기하고 지적질하고 전투적으로 입을 놀려봐야 내 얼굴에 침뱉기 밖에 안된다. 참 허무맹랑하고 한마디로 헛짓이라는 거.
내 인생을 제대로 볼 줄 알기 전에. 내 몸을 바르게 해서 내 생각이 바르게 되고 내 시각이 '현실을 직시할 줄 아는' 상태가 되었을때의 현실은 무척이나 다를 것이다. 역으로 그 상태가 되기 이전엔 모든게 썩어있고 남들이 탁해 보이고 간사하고 공정하지 못하고 나 이외의 모든 것들은 바르게 돌아가지 않는 것만 같고 그런 환경들이 '내'가 살기 힘들어지는 세상을 연출하고 있는 것만 같다는 것이다.
요즘도 가끔은 비판에 칼을 세우거나 원치 않는 고정관념이나 습들이 인식하지 못하고 나올때가 있다. 그럴땐 여지없이 내 기분이 안좋을때이다. 여기서 '기분'이란 감정상태라기 보다는 '氣'의 분할 이라는 의미에서의 기분(氣分)을 말한다. 적어도 그러할 때 다시 '나'에게로 돌아올 수 있다는 것. 정말 이해하기까지 어려운 사안이었지만 다른 사람의 잘못이 아닌 내 시각의 비뚤어짐 때문에 상대가 그렇게 보인다는 그 사실이 이해되면서 왜 그런지 이유를 찾아냈던 것도 '자연의 원리'공부였다.
사람이 살면서 꼭 행복할 필요는 없지만 개인적인 만족으로의 '행복'을 추구한다면 내려놔야 할 것들이 많은 것 같다. 많다기 보다는 본인이 느끼기에 '많아'보이는 것이긴 하지만.
내가 세상에 헛발길질을 더하고 헛소리를 덜할수록 마음은 쓸데없는 부정적 에너지를 만들지 않고 나 아닌 다른 모든 것들을 보면서 '불편해 하는'감정이 줄어들기 때문에 마음이 자연히 가벼워지게 된다.
그래서// 귀에 딱지가 열번 앉아도 강조할 수 밖에 없는 것이 '건강문제'이다. 건강하지 않으면 원치 않아도 불편한 감정과 시각들을 몸에서 생산해내기 때문이다.
재미있어서 하는 공부이지만 '자연의 원리'에 대한 이야기도 조금씩 풀어보려고 한다.
목말라 하는 누군가는 들어줄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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