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Jan08, Spain Barcelona, Lx-2, Soyounglee >
나는 죽음이야말로 다음과 같은 기적적인 일을 완성시킨다고 믿는다.
1. 죽음은 물리적 시간을 무한의 시간으로 바꾼다.
2. 죽음은 공간의 경계를 무한으로 확장시킨다.
3. 죽음은 생명의 근원을 보여준다.
4. 죽음은 다섯 가지 감각기관이 닿을 수 없는 곳까지라도 이해할 수 있는 지혜를 가르쳐 준다.
5. 죽음은 창조를 조직하고 입증하는, 숨어있는 정보를 드러내 보여준다.
바꾸어 말하면, 죽음이란 이 지상에서의 우리의 목적을 성취하는 것이다. 모든 문화가 이것이 사실임을 깊이 확신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더 확실한 높은 수준의 증거를 요구한다. 나는 분명 그러한 증거가 있으리라 믿는다. 그러나 그 증거는, 육체적 생명을 끝내는 것이 곧 죽음이라는 죽음의 정의 때문에, 육체적인 것이 되어서는 안 된다. 이 증거를 이해하기 위해서, 우리는 의식의 지경을 확장시켜서 우리 자신을 더 잘 이해하지 않으면 안 된다. 만약 당신이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존재하는 그런 소중한 존재라는 사실을 깨닫는다면, 당신의 정체성은 죽음을 포함하는 데까지 확장될 것이다. 인간이 별을 넘어 저쪽 세상까지 목적성취를 추구하는 이유는, 바로 우리 자신의 신비가 이곳 지상에서의 육체라는 한계 영역에 있지 않고, 저쪽 세상에 있음을 느끼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죽음이 우리 삶의 목적이며 그 완성이라는 증거를 보기 위해서는, 우리들의 의식의 경계를 확장시켜야만 한다. 그렇지 않고서는 우리 자신과 죽음을 제대로 이해할 수가 없는 것이다.
< 디팩초프라 '죽음 이후의 삶' >
죽음 역시 탄생과 마찬가지로 기적이라고 부를만한 가치로운 일이 있다고 저자는 말한다. 또한 아이러니컬하게도
죽음의 기적은
우리가
죽지 않는다는 데 있다. 라고..
육신이 활동을 멈추는 것은 환상이며, 마치 마술사가 물건을 커튼 뒤로 잠시 숨기지만 여전히 그 물건은 그곳에
존재하듯이, 영혼은 여전히 그곳에 존재하는 것과 같은 이치라는 것이다.
' 죽음은 불멸과의 결혼식이다 ' - 페르시아 시인 Rumi -
' 현재의 생명에게 죽음은 없다. 죽음은 생명 속에서 일어나는 사건이 아니다. 그것은 이 세계의 사실이 아니다 '
- 비트겐슈타인 -
아주 어렸을 적에는 '죽음'을 몰랐고 조금씩 성장해 가면서 흔하게는 '조부모'들의 죽음을 지켜보면서 '죽음'에 대해서 인식하게 되는 것 같다. 어린아이는 엄마가 잠시 외출하였을 때 내 눈앞에서 엄마가 사라졌기에 울곤한다. 엄마가 곧 돌아올 것이라는 것을 인지하기 전까지는 존재가 사라졌다고 느끼는 것이다. 자라면서 친적들 직계 가족들의 '죽음'을 보게되고 그러한 분위기 속에서 '죽음' 에 대한 이미지를 갖게 되지만 결정적으로 내가 사랑했던 사람들이 아직 나를 떠난 적이 없기에 나는 그 슬픔을 잘 모른다고도 볼 수 있다.
그리하여 내가 가진 '죽음'에 대한 많은 것들은 거의 '내 생각'이 아니다. 내가 슬플까? 내가 괴로울까?
라고 생각할 때..어쩌면 그 사람이 내게 더이상 무언가를 해줄 수 없게 되기 때문에 슬픈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기도 한다.
부모님과 같은 경우 내가 기댈 사람이 없어지게 되고 나의 보호막이 사라지게 되는 것이고 나를 사랑해주는 한
사람이 사라지게 되는 것인데..
그럼 그렇게 죽어간 사람들은 혹은 돌아가신 분들은 죽음이 슬펐을까?
죽은 이후에 불행하다고 느낄까?
단지 궁금할 뿐 죽음에 대해서 우린 잘 알지 못한다. 왜 죽는지 죽고나면 어떻게 되는지 슬픈지 기쁜지 어떤 세상이 펼쳐지는지...
과거에는 그저 누군가 '죽는다'라고 하면 '사라진다' '없어진다' '더이상 볼 수 없다' 라는 단절감을 느끼기에 슬퍼했지만 죽음에 대한 인식이 바뀌면 죽음을 보거나 대할때의 감정 역시 달라지게 된다.
집착이 많을수록 죽음은 두렵고 슬픈 일이 되는 것 같다.
내가 집착이 많았을때 일수록 나는 만약 내가 죽는다면? 혹은 누군가에 의해 죽게 된다면? 이라는 가정에서
강하게 반발하거나 '절대 내가 원치 않을 때 죽지않겠다'고 선언했던 것 같다.
죽음에 대한 인식이 처음 바뀌기 시작했던 것은 말 그대로 그것은 '자연스러운' 하나의 사건이며
그의 영혼이 원해서 한 일을 내가 안타까워 할 필요 없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나는 돌아가신 분들이 육체적인 생명이 끝났을 때 슬플거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죽는 순간에는 더 큰 깨달음이 있으리라고 본다. 집착이 사라지기 때문에..
그런면에서 보면 죽는다는 것은 집착을 크게 내려놓는 방법이기도 하고 더 가벼워지거나 자유로움을 느낄 수도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죽은사람 앞에서 내가 왜 슬퍼하는가? 를 물었을 때
실은 슬퍼할 이유가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내 집착이나 내 욕심이 아니라면 말이다.
죽음을 누가 슬픈거라고 했지..
그리고 왜 죽은 사람을 안타까워 하지..
나는 그들이 더 자유로워지고 가벼워진 상태로 변화되었을 것을 믿고 그렇기에
원하는 것을 택해서 갔음에 축복하고 싶다.
내가 죽는다고 해도 마찬가지다.
그냥 가고 오고 상태를 바꾸고 외출을 하는 일이다.
그리고 그 밑바닥에는 자신이 원했기에 '죽음'또한 선택되어진 것이라고 여겨진다.
그래서 아직 죽음을 맞이해보지 않은 자신이라고 하더라도 과거만큼 죽음이 슬프거나 두렵거나 저항할 대상은
아니게 되었다.
다만, 죽음보다 두려운 것은 질병이다. 아프거나 힘들게 죽어가는 일들이다.
그렇기에 내가 존재상태를 변화함에 있어서 어떻게 평온하게 탈바꿈 할 수 있을까?
건강하게 살다가 어떻게 평온한 미소를 짓고 갈 수 있을까? 하는 것만이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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