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뉴욕에서의 추억.. 나는 아름다운 추억을 맛있게 먹을 줄 아는 사람이다. 2010_12 Eunice ]
실재의 세계는 단지 묵은 것에 대한 완전한 용서에 의해 이룩된다.
내가 용서하지 않은 이들을 나는 두려워하게 되어있다.
그리고 두려움을 곁에 두고는 아무도 사랑에 이르지 못한다.
용서는 언제나 용서를 해주는 사람에 달려 있다.
네가 용서하는 사람에게는 너의 환상에 대해
너 자신을 용서하는 힘이 주어진다.
네가 주는 자유라는 선물에 의해 바로
너에게 자유가 주어지는 것이다.
너는 줌으로써 받게 될 것이다.
줌과 받음은 같은 것이다.
너 자신에 대한 환상과 이 세상에 대한 환상은 하나이다.
모든 용서는 곧 너 자신을 위한 선물인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용서는 이 세상의 크나큰 요구이다.
하지만 그것은 이 세상이 환상의 세상이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용서하는 사람은 자신을 환상에서 해방시키는 반면,
용서를 억누르고 있는 사람은 자신을 환상에 묶어놓고 있는 것이다.
용서를 하지 않으려는 사람은 반드시 비판을 일삼는다.
왜냐하면 용서하지 못했다는 사실을
정당화시켜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자신을 용서하는 사람은 반드시
진리를 정확히 있는 그대로 반갑게 맞이할 줄 알게 된다.
용서는 행복으로 가는 열쇠이다.
네가 찾는 평화에 대한 해답이 여기에 있다.
전혀 납득할 수 없는 듯한 세상에서
의미를 찾게 하는 열쇠가 여기에 있다.
호시탐탐 너를 위협하는 것처럼 보이고,
고요와 평화를 찾고자 하는 네 희망에
불신을 가져다주는, 그 확연한 위험 속에서도
안전으로 가는 길이 여기에 있다.
모든 물음들의 해답이 여기에 있다.
여기서 모든 불신의 끝이 마침내 보장되는 것이다.
내가 용서하지 않은 이들을 나는 두려워하게 되어있다.
그리고 두려움을 곁에 두고는 아무도 사랑에 이르지 못한다.
용서는 언제나 용서를 해주는 사람에 달려 있다.
네가 용서하는 사람에게는 너의 환상에 대해
너 자신을 용서하는 힘이 주어진다.
네가 주는 자유라는 선물에 의해 바로
너에게 자유가 주어지는 것이다.
너는 줌으로써 받게 될 것이다.
줌과 받음은 같은 것이다.
너 자신에 대한 환상과 이 세상에 대한 환상은 하나이다.
모든 용서는 곧 너 자신을 위한 선물인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용서는 이 세상의 크나큰 요구이다.
하지만 그것은 이 세상이 환상의 세상이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용서하는 사람은 자신을 환상에서 해방시키는 반면,
용서를 억누르고 있는 사람은 자신을 환상에 묶어놓고 있는 것이다.
용서를 하지 않으려는 사람은 반드시 비판을 일삼는다.
왜냐하면 용서하지 못했다는 사실을
정당화시켜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자신을 용서하는 사람은 반드시
진리를 정확히 있는 그대로 반갑게 맞이할 줄 알게 된다.
용서는 행복으로 가는 열쇠이다.
네가 찾는 평화에 대한 해답이 여기에 있다.
전혀 납득할 수 없는 듯한 세상에서
의미를 찾게 하는 열쇠가 여기에 있다.
호시탐탐 너를 위협하는 것처럼 보이고,
고요와 평화를 찾고자 하는 네 희망에
불신을 가져다주는, 그 확연한 위험 속에서도
안전으로 가는 길이 여기에 있다.
모든 물음들의 해답이 여기에 있다.
여기서 모든 불신의 끝이 마침내 보장되는 것이다.
# 용서는 나로부터 이루어지고 내 과거로부터 시작된다. 용서를 하는 것은 큰 어려움이고 '용서'란 단어를 듣는순간
우리는 억울해할테지만 용서할 것이 없음을 알는 순간 나는 자유로워진다. 내가 두려워 꺼내놓지 못한 내 안의 기억들과 감정들에 대한 용서가 이루어지지 않으면 나는 그것들을 외부 세계에서 경험하게 될 것이다. 내가 불편해 하는 것들의 기원들을 내 안에서 찾고 들여다 보려고 한다. 용서가 '환상을 벗어나게 되는' 도구로서 유용한 이유는 그것이 극도로 어렵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때론 악에 받치고 왜 선한 내가 악한 것들을 용서해야 하는것인지 이해가 안가는 '환상'속에서 발버둥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내 안에서 나는 여지없이 본다. 두려움을. 감히 내려놓지 못하고 꺼내어지지 못하는 내 과거와 내 마음 깊숙한 곳에 있는 이것들은 무엇일까. 생각해본다. 두려움을 가슴 깊이 숨겨놓은 채로 사랑에 이르지 못한다. 신과 함께하는 '거리가 없는 여행'이 아니라 머나먼 여정이 될 것이다.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행동들을 볼 때 나는 '이해할 수 없다'는 판단과 함께 답답해 질 때가 있다. 그러면 '영혼의 선물'의 챕터를 펼치고 자신을 이해하려고 한다. 빨리 내가 '평화로움'의 상태를 잃었다는 것을 발견하기 가장 좋은 최신의 방법(^^') 이기 때문이다. 한 줄 한 줄 묵상하듯이 겸허히 읽는다. 그러다보면 다시 평화의 상태로 돌아오고 이 꿈을 실재처럼 반응한 자신을 보게 된다. 매순간 나를 놓치면 기꺼이 빠른시간안에 '평화'와 '고요함'과 '사랑'으로 나를 연결하려고 한다. 그리고 자각하지 못했던 자신을 용서함으로써 가볍게 잊어버린다.
그래.. 근데 왜 이 꿈은 이토록 강렬한 실체처럼 느껴지는 걸까?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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