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아주고 싶은 눈이었다... 2010_12 NY. Eunice ]
양자물리학을 들여다 보면 우리의 세포는 개개의 의식이 있고 세포의 관점이라는 것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게 된다. 세포가 의식의 가장 작은 단위라는 것인데 '비만'에 대해서 이야기할 때 '지방조직'이 단지 수동적이지 않을 뿐 아니라 '내분비기관'으로 인식되는 것에서 볼 수 있듯이 세포가 의식을 가진것과 맥락을 같이 한다. 내가 변화시키고 싶은 것이 있는데 세포의 시스템은 여전히 그것을 고집한다면 '변화'를 만들어 내는 것 자체가 어려울 것이다. '다이어트'가 그럴 것이고 '흡연'이나 '음주' '마약' 같은 것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성적인 쾌락도 그렇고 우리의 세포가 중독에 속된말로 '쩔어' 있을 때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없다 혹은 해도 안된다 라는 생각이 지배적이다.
중독은 쉽게 말하자면 내가 의지적으로 멈출 수 없는 무언가이다. 예를들어 우울함게 빠지거나 쉽게 화가나거나 하는 감정 역시 내가 멈출 수가 없다면 내 세포는 그것에 중독상태이다. 따라서 개개의 세포들은 그 중독상태에 맞는 의식들을 가지고 산다. 계속해서 다운되게 만들거나 우울하게 되거나 화를 내거나 부정적으로 생각하거나 하는 많은 감정상태들이 이미 세포차원에서 중독상태라는 것이다. 내가 그것을 '멈출수가 없다면' 말이다.
하지만 세포는 하루에도 셀수 없을 만큼 많이 죽어가고 또 새로 태어난다. 따라서 우리가 의식을 관찰하거나 변화하기 위해서 시스템을 제어하려는 노력을 한다면 새로 태어나는 수많은 세포들의 의식이 나를 지지하고 따를 것이다. 거기에 강한 초점이 맞추어져서 계속된 새로운 인식을 준다면 그때서야 우리는 중독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된다.
중독에 대한 유명한 동물실험이 있다.
동물들은 이러한 신경물질을 생산하는 뇌의 일정부분에 전기적인 중독이 되어 있었는데 화학적으로 이러한 물질을 얻을 수 있도록 조종버튼을 누를 수 있는 훈련시켰다. 말 그대로 신경화학물질이 나오도록 말이다. 그러자 배고픔이나 성욕, 갈증이나 수면욕보다 오히려 신경화학물질이 나오는 조종버튼을 선택했다는 것이다. 사실 이 상황은 육체적으로 기진맥진 할 정도로 계속되어서 스스로 몸을 돌보지 못하게 되어서야 멈추게 되었습니다.
인간의 중독과 비슷하다. 어쩌면 매일과한 음주를 하다가 간성혼수가 와서 정신을 잃어보는 경험을 해야 그것을 멈출 수 있다던가 혹은 내 인생이 피폐해질 정도로 감정이 극에 치닫고 있어 그 화가 나를 집어 삼키고 나서야 내가 무엇을 했는지 아주 조금 들여다 보게 되는.. ? 그런거. 그저 그런 감정들이 나를 갉아먹도록 놓아두고 있다. 이를테면 그것이 나를 쓰러뜨릴때까지 말이다. 그것은 일종의 스트레스인데 많은 사람들이 이러한 감정적인 스트레스에 중독되어 있고 이것이 스스로에게 전혀 도움이 되지 않음에도 그 상황을 멈출 수가 없는 것이다.
그 사람에 대해서 알고자 한다면 그 사람이 무엇에 중독되어 있는지 보면 된다. 무엇을 끊을 수 없는지를..
현실은 너무나 또렷한데 과학은 갈수록 이 현실이 '실재'가 아님을 밝혀내고 있다. 아니 이미 밝혔다. 물체와 물체가 실제적으로 부딪혔지만 그것은 과학적으로 '닿지'않았다는 이야기나 관찰자가 없을때 '가능성'의 존재로 있던 것들이 '관찰자'가 참여함으로써 그 물질의 위치성이 생긴다는 것 누군가 '보는사람'이 있을때와 없을때 미시세계가 돌아가는 방식이 다르다는 것을 이해하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심지어는 '과거'또한 바꿀 수 있다고 한다. 게다가 반론이 없을법한 무작위적으로 0.또는 1이 나오게 만드는 40년이 넘도록 돌아가는 기계에게 의도적으로 어느 한쪽이 더 많이 나오도록 단지 '생각'에 초점을 맞췄을때 재미있게도.. 한쪽이 더 많이 나왔는가? 하는 질문에 '그렇다'라는 결론이 나온다.
양자역학의 세계는 '가능성'을 많이 말해준다. 이 현실이 '실재가 아님'을 이미 밝혀냈다 하더라도 우리는 무던히도 고정된 물체와 물질을 느낀다. 물질을 물질 아닌 것으로 보지 못하고 오로지 물질만으로 본다. 하지만 우리의 '생각'은 무수한 '가능성'을 나타내고 있고 실제로 자신의 삶을 매일 창조하고 있다. 그 가능성의 세계가 양자물리학에서 말하는 바이다. 믿기 어렵지만 정말 내 생각이 그 안에 그 고정된 물질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 미시세계에서 보여주는 현실이다. 내가 쓰는 이 컴퓨터가 지금 내가 보는 곳에 있게 된 것은 내가 참여해서 지켜보았고 그것이 거기 있을 거라는 생각을 하기 때문이다.내가 컴퓨터를 보기 전까지는 컴퓨터는 수없이 다양한 가능성의 상태로 어떠한 범위 안에 둘 또는 셋 넷 여럿.. 의 상태로 한번에 존재한다. 그런 점에서 보면 우리는 생각을 온 세상에 투사시키고 있는 것이 맞다. 내가 그것을 단지 '본다'는 것 만으로도 달라지는데 '의도'를 갖고 보니 얼마나 다르겠는가.
내가 바꿀 수 있는 것이 없다고 생각하는 세상과 내 의식이 창조해가고 있는 세상을 대하는 태도는 다를 것이다. 중독 역시 바꿀 수 없다고 생각하고 있는 오래된 습관일 뿐이다. 자신이 부정적인 것에 의식의 에너지를 계속 썼기에 만들어진 뇌의 시스템일 뿐. 이 오래된 중독의 시스템이 빠지게 되면 정신적인 삶은 고통에 의해 지배당한다. 마음만 먹으면 고통이 0.000001초 안에서 감정과 함께 되살아 나게 되는 것. 따라서 과거의 고통에 의해 지금의 인식은 모두 채색이 되어져 버린다. 사람들이 반응하는 방식은 이러한 과거의 고통에 기원한다.
결국 이런 감정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세포를 매일 일정하게 반복해서 동일한 방식이나 화학물질로 충격을 줘야 한다. 더 젊은 세포들이 나의 새로운 변화를 지지하고 낡은 습관을 가진 세포들과 안녕~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우리는 절대 '너무도 완벽한' 사람으로 환생하지 않을 것이다. 또한 우리의 낡은 습관으로부터 나오는 고통과 중독은 인식의 변화 없이는 늘 거기 어딘가의 언저리에 있게 될 것이다. 이러한 중독 역시 단지 가르침을 위한 장치일 뿐이라는 것을 알게되면 그저 나타났다가 다시 죽어가는 세포들과 함께 보낼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세상을 창조하는 데에 팔 걷고 나설 수 있지 않을까. '가능성'의 영역을 알게되면 우리는 고정된 세상보다는 우리의 생각으로 모든 것이 가능해지는 놀라운 세상을 경험할 수 있을 것이다. [Eunic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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