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얼마나 아름다운지... ]
자기 공감은 자기 자신을 표현하거나 다른 사람을 공감으로 들어주기 전에 우선적으로 필요한 NVC의 핵심적인 과정이다. 다른 사람을 공감할 때와 똑같이 연민과 관심으로 자신을 들어주고 수용하는 것이다.
자신의 한계 (실수,잘못)에서 자신을 미워하거나 자존심을 잃지 않으면서 실수를 숨기는 대신 있는 그대로 인정하여 또다시 같은 선택을 반복하지 않도록 배우고 자랄 수 있게 해주는 데 도움이 되는 프로세스다.
'실수'역시 환상이다. Wonderful mistake라는 것이다.
이것은 모든 영적인 성장에 있어서의 '선물'과 다름없다.
내면의 자책하는 메시지들은 삶의 생동감을 빼앗고 우리를 무기력하게 만든다. 그래서 우리의 실수를 직시하는 대신 소비성이나 중독성 있는 방법으로 해결하려고 하거나 아니면 다른 사람에게 의존하려고 한다. 자기 공감이란 이런 내면의 자책하는 메시지들을 그대로 보고 그 안에 숨어 있는 삶의 에너지와 연결하는 것이다. 우리가 본래 가지고 있는 내면의 긍정적인 에너지와 연결하는 것이다.
자기공감이 잘 되어지지 않으면 불현듯! 뜬금없이~ 가~~~끔 혹은 문득문득 나를 '과거로 초대'하는 감정들이 올라오게 된다. 생각하면 화가나거나 우울하게 하거나 기운을 빠지게 하는 것들. 그런 생각들은 내가 의도치 않게 특히 의식하지 못하고 있을때 불쑥 튀어나와 버리는데 그것에 감정도 함께 따라와 순식간에 지옥으로 만들거나 나락으로 떨어지게 하는 힘이 있다.
이러한 감정들을 용서하고 수용하지 못하면 계속 마음속에 남게되고 들여다보고 싶지 않아서 돌보아지지 않은 이런 과거의 감정들은 10년이 지나도 20년? 아니 평생이 가도 그 기억에서 벗어나지 못한채로 문득~ 문득 나타나 나를 옥죄고 말게된다.
생각은 생각을 낳는다. 그 생각은 결국 나를 짓누르게까지 몰고간다. 지난날을 애도하자. 자신이 그러했음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그 감정이 무엇이었고 그때 내 욕구가 무엇이었는지를 돌보아 줘야 한다. 이것이 자기공감을 하는 이유이고 이것을 통해 생각의 재생산을 멈추고 부정적인 기운을 끄집어내게 된다.
여기에 좋은 비유의 설명을 들었는데 과거의 이러한 부정적 감정들은 잡초와 같다. 의도치 않게 무성하게 강한 생명력을 가지고 자라지만 뽑아서 뿌리를 보는순간 힘이빠지고 시들어 버리는 것.
양자역학에서의 '관찰자'는 이렇게 깊은 연관성을 가진다. 양자물리학에서 '관찰자'는 더이상 관찰하는 사람이 아니라 '참여자'라고 불린다. 단지 '관찰'하는 시선을 두었을 뿐인데 결국 그 사건에 '참여'하게 되어 결과를 바꾸어 놓기 때문이다.
왜 그저 바라보라고 하는지 그리고 왜 바라보면 그것을 의식하게 되고 또 감정적 결부에서 한발작 떨어지면서 때로는 그것이 사라지기까지 하는건지는 모른다. 하지만 '관찰한다'는 것이 결국 참여를 이끌어내어 상황에 영향을 미치기에 우리는 이런 방법을 쓸 수 있다.
용서에 있어서 자신에 대한 용서이든 타인에 대한 용서이든 '머리'로는 하지 못한다. 그것은 그저 용서해야만 하니까.. 라는 머리의 생각을 가지고 하는 것이고 미안해~ 라고 하면서 속으로는 그래도 화가나/ 하는 마음이 남아있다. 머리가 용서해도 몸은 용서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몸은 여전히 가지고 있는 불편한 감정으로 다시 불쑥불쑥 솟아오를테니까.
모든 행동과 말의 뒤에는 '욕구'가 숨어있다' 연습을 해보다보면 우리가 얼마나 우리의 욕구를 들여다보는 것이 익숙지 않은지 알 수 있다. 화를 내는것도 쉽고 비난하는 것도 쉽고 짜증내는 것도, 소리지르는 것도 순식간의 일이지만 그런 행동을 하는 자신이 도대체 무엇을 원하는 것인지 잘 알지 못한다.
다음부터 잘해~ 라던가 다음부터는 좀 친절하게 해줘~ 너만 잘하면 돼/ 알잖아~/ 내가 말했었잖아/ 하는 말들은 전혀 구체적이지 않다. 이럴때에는 자신조차 자신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몰라 나의 부정적 감정의 원인을 상대에게 놓게 된다. 상대가 자신의 욕구를 들여다 볼 수 있도록 주의를 기울여주면 사람들은 자신의 내면으로 조금씩 걸어들어가게 되는데 그때야 조금의 발견이 이루어진다. 어.. 그렇네~ 내가 이런 느낌을 원했던 거네... 라면서..
대개 이 자기공감 연습에서는 이런 감정을 느끼게 된다. 내가 원한 것은 A인데 나는 4를 얻으려는 말과 행동을 하고 있다는 것을 말이다. 이것이 바로 대화에 있어서 작동하지 않는 시스템을 갖고 살아가는 것과 같다. 나의 욕구와 친해지고 나의 감정들을 두려움없이 바라볼 수 있을때 교정이 일어나고 수용과 용서를 양손에 쥘 수 있게 된다.
우리가 가져야 할 툴은 그런게 아닐까.. 싶다. [Euni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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